• 최종편집 2024-02-01(목)
 
  • 형설지공의 정신으로 뜻을 이룬 성형외과 명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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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W성형외과 원장은 최근 부산시학교안전공제회 이사와 보상심사위원, 장해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부산시교육감 감사장을 받았다. 부산시성형외과의사회 회장으로 지역 의료계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는 박정민 원장은 실력으로 이름난 성형외과 전문의다. 주간인물은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박정민 원장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_박미희 기자

 

박정민 원장은 이름난 성형외과 명의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장학생으로 동아대 의대에 진학해 동아대학교 전체 수석 졸업생으로 졸업을 했다. 이로써 김영삼 대통령 청와대 오찬에 초청받았으며 정부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의대를 졸업함과 동시에 외국인 미국의사시험에 합격해 다시 한 번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동아대학교 성형외과 주임교수 및 과장을 역임했고 지방유래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국제인명센터(IBC) ‘2006 올해의 의학자’로 선정됐으며 미국인명기관(ABI) ‘2006 올해의 연구업적상’을 수상하는 등 의학자로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6년 부산 서면에 W성형외과를 개원해 선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부산시성형외과의사회 회장을 맡아 지역 의료계 발전을 이끌고 있다. 


성형외과 분야의 이름난 명의인 박정민 원장은 학창 시절부터 수재로 이름을 알렸지만 원래부터 공부에 썩 취미가 있는 학생은 아니었단다. “중학생 때 만해도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그러다 고1 때 사춘기를 겪으면서 ‘어른이 돼서도 부모님께 계속 의지할 순 없고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학업에 열중하기 시작했어요. 마음을 잡은 후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적이 올랐어요. 한 번도 성적이 떨어진 적 없이 오르다 보니 고2 담임선생님은 제가 커닝을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시더군요(웃음). 산의 정상을 오르면 다시 내려가기 싫은 것처럼 다시 성적이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 정말 더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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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의사회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 

 

의대에 진학하고 난 뒤 그는 더욱 학구열에 불탔다.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전액 장학금을 받아 의대를 졸업할 정도로 그는 이미 실력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한 길을 준비했다. “성형외과는 매번 똑같은 것을 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창의적인 영역이라 더욱 매력 있었어요. 수업 시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관련 의학 서적을 따로 사서 통학버스 안에서 시간을 쪼개 공부를 했어요. 길을 걸어가면서 한 전봇대 앞에서 한 페이지를 읽고 복기를 하고 다음 전봇대에서 외운 내용이 생각나지 않으면 완벽하게 외울 때까지 전봇대에서 서서 그 페이지를 읽고 또 읽었어요. 마음에 드는 도서관 자리를 잡기 위해서 이른 새벽에 가장 먼저 도서관에 왔고 수위 아저씨가 제 자리만 남겨두고 도서관 전체 불을 끌 때까지 가장 늦게 도서관에 남아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는 “학교와 레지던트 때의 공부가 의료기술 습득의 기초가 되는 이론을 닦은 시기”라면서 “그때 한 공부가 평생의 실력을 좌우하는 것 같다”라며 과거를 회생했다.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전액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는 젊은 의대생. 장래가 촉망되는 그를 일찍이 알아본 여러 스승들은 미국 유학을 권유했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 공부하는 그에겐 닿을 수 없는 꿈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을 딛고 그는 대학 전체 수석으로 의대를 졸업함과 동시에 외국인 미국의사시험에 합격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의 교수를 지내면서 의학자로서의 꿈을 펼쳤다. 지방유래 줄기세포 관련 연구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국제인명센터(IBC) ‘2006 올해의 의학자’로 선정됐으며 미국인명기관(ABI) ‘2006 올해의 연구업적상’을 수상하는 등 그 간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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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사운드 니나노로 활동하고 있는 박정민 원장 

 

2006년 부산 서면에서 W성형외과를 개원해 선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원으로 키워냈다. 부산 개원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W성형외과의원. 16여 년의 세월 동안 오랫동안 환자들에게 신뢰를 받아온 비결은 무엇일까? “저는 상담을 할 때 제 가족을 대한다는 마음으로 늘 성심성의껏 상담해요. 수술의 장, 단점을 모두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지나친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정석대로 하자’가 진료 소신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환자를 보지도 않을뿐더러 무리한 수술은 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컴플레인이 없었어요. 새로운 의료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고 한 분, 한 분 꼼꼼하고 완벽하게 수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광고에 의존하기보다는 환자 한 분, 한 분이 저희 병원의 모델이고 명함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에 대해 묻자 그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지인의 딸이었던 한 학생이 기억에 남아요.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 아이는 한국의 단체 문화에 익숙지 않았기에 중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어요. 활발했던 아이는 방 밖에도 나오지 않고 깊은 마음의 병을 얻었죠. 아버지는 오랜 설득 끝에 일본 유학을 보내달라는 것과 평소 콤플렉스였던 쌍꺼풀 수술을 해달라는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면 다시 학교를 가겠다는 약속을 얻어냈죠. 그렇게 쌍꺼풀 수술로 자신감을 되찾는 아이는 일본 유학생활에 성공적으로 적응했고 최근에 아버지를 통해 일본 와세대 정치외교과에 합격해 활기찬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과 감사의 인사를 들었어요. 이 아이를 통해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성형수술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웃음).”


박정민 원장은 부산시성형외과의사회 회장, 부산시학교안전공제회 이사와 보상심사위원, 장해심사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2006년부터 몸 담아온 부산시학교안전공제회에서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에는 부산시 교육감 감사장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에 관해 그는 “학교안전공제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구성원을 대변해 수상을 했을 뿐”이라며 “수상의 영광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돌린다”라는 말을 전했다. 


아버지와 자신, 그리고 아들에 이어 영주권을 포기하고 병역의 의무를 다한 병역명문가 집안이다. 의사로서 정도를 걷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매사 최선을 다 하자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부산시의사회 합창단, 그룹사운드 니나노로 활동하며 활발하게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그는 끝으로 “지역 의료계 발전을 위해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라는 따뜻한 바람을 전했다.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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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교육감 감사장 수상식




주간인물(weeklypeople)-박미희 기자 wp1991@daum.net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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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와의 만남] 박정민 부산성형외과의사회 회장 / W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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